힘내!! 포기하지 마!! 추위에 지지 마!!
추위가 갑자기 들이닥치면, 흡연자의 루틴이 가장 먼저 흔들립니다. 평소처럼 밖에 나가려다 문틈으로 스며드는 바람만 맞아도 ‘그냥 피우지 말까?’ 하는 생각이 스치죠. 하지만 막상 나가보면 라이터를 바람 반대 방향으로 가리는 익숙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추위 앞에서는 누구나 조금 우스워지지만, 흡연자는 특히 그렇습니다.
찬 공기 속에서 피우는 담배는 맛도 조금 달라집니다. 여름엔 무심하게 넘기던 감각들이, 겨울엔 조금 더 거칠고 선명하게 와닿습니다. 불편하고 느리고, 오래 걸리는 한 대. 그럼에도 피우게 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 계절의 담배는 쉽지 않은 만큼 존재감을 확실히 남기니까요.
초겨울 한파 속에서도 담배 한 대를 잊지 않은 여러분께, 열네 번째 담타로 인사드립니다.
담배 한 대와 함께하는 짧은 순간, 담최몇을 읽으면 담배가 더 맛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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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담배 디자인이 걸어온 길 by. 말과 보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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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포장은 늘 시대를 비추는 작은 창처럼 기능해왔습니다. 작은 종이갑 안에 시대의 감수성, 메시지, 취향까지 모두 겹겹이 쌓여 있죠. 그래서 담배 포장을 들여다보는 일은 우리가 어떤 시대를 지나왔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무엇을 드러내고 싶었는지를 다시 읽어내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의 담배 포장 디자인이 남겨놓은 흔적을 따라갑니다. 개항기 이후의 화려한 서양풍, 세계화의 욕망, 그리고 오늘날의 규제까지. 사라진 이름들과 남겨진 이미지들 속에서, 한국 담배 포장이 말해온 것들을 살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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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시가렛'이 들어온 건 19세기 후반이었습니다. 개항기를 지나며 담배는 급격히 서구화되었고, 궐련의 표면에는 늘 여인, 새, 꽃, 혹은 동물이 그려졌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유럽이 사랑하던 낭만적 이미지들이 조선의 담뱃갑 위로 옮겨온 셈이었죠. 이 서양식 담배들은 문명과 개화의 상징이 되었고, 그 포장은 곧 근대의 얼굴이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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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조선총독부가 담배전매령을 시행하면서 일본식 이름과 디자인이 시장을 장악했다가, 이후 해방과 함께 1945년 첫 국산 담배 '승리'가 출시됩니다. 장식 하나 없는 흰 바탕 위 붓글씨로 쓰인 '승리'라는 이름은, 전쟁 후의 황량한 풍경과 새 시대의 의지를 동시에 담고 있었습니다. 뒤이어 1948년에 출시된 '계명'은 지구 위에 한반도와 수탉을 배치해 정부 수립의 자부심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전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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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에 접어들며 담배 디자인은 다시 한 번 큰 전환점을 맞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담배 산업은 국가 기반산업으로 자리 잡았고, 국산 필터 담배의 고급화와 대량생산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이 시기 담뱃갑 디자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백두산’, ‘무궁화’, ‘화랑’, ‘청자’, ‘거북선’처럼 민족 정체성과 해방·독립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 이름들이 한 축을 이루었고, 다른 한 축에는 ‘백구’, ‘샛별’, ‘공작’, ‘희망’, ‘새마을’처럼 자연물이나 소박한 희망을 담은 친근한 이미지들이 자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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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담배 시장이 개방되면서 '피스'나 '말보로' 같은 외국 담배들이 광고와 포스터를 통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담배의 이미지는 급격히 세련되어 갔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맞아 출시된 '88' 담배는 하늘색과 흰색의 조합으로 청량한 분위기를 담아냈고, 1994년의 '디스'는 회색과 푸른색을 활용한 디자인으로 도시적인 감각을 강조했습니다.
이후 시장에서는 '라일락', '에세', '겟투'처럼 영어 이름이 주류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한글 이름은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의 담배 포장은 더 이상 국가의 상징이나 구호를 담는 표면이 아닌, 소비자의 취향과 세계화의 감각을 반영하는 새로운 무대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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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국담배인삼공사가 KT&G로 이름을 바꾼 뒤 선보인 '레종'은 고양이를 모티프로 활용해 이전과는 다른 도시적이고 냉소적인 이미지를 선보였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디스 플러스'의 꽃과 고래처럼 세련된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는 디자인들이 등장했고, 담배는 국가적 상징에서 완전히 벗어나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소비재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담배는 그 어느 때보다 불편한 물건이 되기도 했습니다. 2016년부터 담뱃갑 면적의 절반을 경고 사진이 차지하기 되면서 표현의 여지가 크게 줄었고, 일부 국가에서는 아예 포장을 단일 색과 통일된 디자인으로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담배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포장은 이전처럼 자유롭게 개성을 드러낼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선 셈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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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포장은 언제나 그 시대의 감성을 담아왔습니다. 어떤 때는 국가의 상징이었고, 어떤 때는 근대 문명의 얼굴이었죠. 화사한 색을 아낌없이 쓰던 시기도 있었고, 상징과 구호가 전면에 나섰던 시기도 있었으며, 서양식 미감을 따라가려 애쓰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담뱃갑은 절반이 경고 사진으로 뒤덮여, 표현 자체가 크게 제한되었고 한눈에 봐도 본능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디자인으로 어떤 분위기나 메시지를 담아낼 여지가 거의 사라진 셈입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가 달라졌다면, 담뱃갑 또한 그 시대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변한 것뿐입니다.
앞으로 담배 포장이 어떤 얼굴을 갖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디자인 역시 이 시대가 담배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담뱃갑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한 시대를 비춰주리라고 생각합니다.
참고자료
2012 KT&G와 함께하는 한국담배 변천사 특별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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