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과 담배
12월이 되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자연스럽게 많아집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들이 이어지고, 오랜만에 마주하는 사람들까지 하나둘씩 얼굴을 비추죠. 이렇게 여러 사람들과 시간을 나누다 보면, 담배가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리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밖으로 나가 피우는 담배는 어색한 침묵을 대신 받아내고, 시작하기엔 이른 대화를 천천히 끌어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새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셈이죠.
연말의 모임에서는 담배가 하나의 기폭제가 되기도 합니다. 담배 한 대 하자는 말에 사람들이 자연스레 움직이고, 바람 부는 바깥에서도 웃음과 말이 더 쉽게 오갑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런 한 대가 모임의 분위기를 밝게 띄우는 순간들을 참 좋아하게 됩니다.
다가올 자리들에서 담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가 한 대 하시게 된다면, 그때 담최몇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분명 다들 좋아해주지 않을까요? 하하.
담배 한 대와 함께하는 짧은 순간, 담최몇을 읽으면 담배가 더 맛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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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담배는 가짜야! – 가상의 담배 브랜드 by. 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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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ley라는 담배 브랜드를 아시나요? Red Apple은요? 생소한 이 브랜드들은 담배 마니아들보다 미국 영화와 드라마 팬들에게 오히려 유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브랜드의 정체는 바로 가상의 담배 브랜드! 자세히 한 번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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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1] 보기만 해도 흡연 욕구가 떨어지는 것 같은 Red Apple의 포장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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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 픽션, 킬 빌, 장고: 분노의 추적자… 제목만 들어도 피 냄새가 나는 영화들을 감독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엔 이스터 에그처럼 늘 등장하는 담배 브랜드가 있죠. 바로 Red Apple입니다. 포장지부터 감독의 비범한 취향이 듬뿍 들어간 Red Apple은 1994년작 펄프 픽션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흡연 장면이 아니더라도 광고판이나, 등장인물들의 언급을 통하여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친한 친구로 알려진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의 작품이나, 촬영 당시 타란티노 감독의 여자친구였던 미라 소비노 주연의 영화 “로미와 미셀”에서 카메오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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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2] Red Apple의 화려한 데뷔작, 펄프 픽션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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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3] 인기만큼 종류도 다양한 Morley. 위쪽은 구버전, 아래쪽은 최근 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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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한 담배 브랜드, Morley는 말보로의 애칭 Marleys를 살짝 비튼 소품용 담배입니다. 구버젼 디자인은 카멜과 비슷하지만, 최근에는 말보로와 유사한 모양새를 하고 있군요. 1960년대 당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실존하는 담배 브랜드를 상표법 혹은 저작권법 위반, 또는 담배 회사로부터 홍보비를 받지 못하는 등의 문제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할리우드는 가상의 담배 브랜드 소품이 필요했고, Morley는 대부분의 흡연 장면에서 사용되곤 했습니다. 이렇게 사랑받던 Morley는 197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갑작스럽게 스크린에서 그 모습을 감추게 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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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미국은 TV와 라디오에서 흡연 광고를 금지합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TV프로그램의 흡연 장면도 줄어들게 됩니다. 이에 담배 회사는 영화를 통한 홍보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Morley의 자리는 “진짜 담배”가 대신하게 되었죠.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번 반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1998년, 영화와 TV 양 측에서 흡연 광고를 금지하는 Master Settlement Agreement가 통과되며 Morley는 스크린에 화려하게 컴백합니다. (현재에도 현실 고증을 중요시 하는 영상매체에선 실존하는 담배 브랜드가 등장하곤 합니다. 물론 홍보용은 아니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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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4] 대중들에게 Morley가 널리 퍼지게 된 계기, The X-Files 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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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ley는 미스터리 SF 드라마 The X-Files 시리즈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며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됩니다. 파일럿 에피소드부터 등장한 메인 빌런 중 하나인 “Cigarette Smoking Man”이 계속해서 피우는 담배로 Morley가 비춰지죠. X-Files 뿐만이 아닌 브레이킹 배드, CSI, 프렌즈 등 한국에서도 사랑받는 미국 드라마에서 Morley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System Shock 2, Gone Home 등 게임에서까지 사용되며, 이제 Morley는 그 등장만으로 “이 작품은 허구의 창작물”을 뜻하는 문화적 아이콘의 반열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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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상업적 문제와 더불어 할리우드에서 가짜 브랜드를 사용하는 이유는 더 있습니다. 최근에는 많은 회사들이 브랜드의 이미지를 신경쓰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면 특정 브랜드 담배를 피우는 등장인물이 폐암으로 죽는다면? 혹은 무지막지한 악인이 자신들의 제품을 흡연한다면 소비자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가 각인되어 판매에 악영향을 끼칠 걱정을 하는거죠. 이런 이유로 Morley가 스크린과 TV에서 자취를 감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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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oft ich meine Tobackspfeife(내 파이프를 들 때마다) by. 말과 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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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가 꽤 유명한 파이프 애연가였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기록에 따르면 그는 아침을 여는 순간에도, 책상 앞에서 악보를 쓸 때도 늘 파이프를 곁에 두었다고 합니다. 개꼴초...
그런 바흐가 파이프 담배를 주제로 남긴 곡이 있습니다. So oft ich meine Tobackspfeife. 제목 그대로 ‘내 파이프를 들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담은 짧은 노래입니다.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선율은 파이프 연기가 허공에서 천천히 피어오르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곡 전체에는 파이프 한 대가 주는 느긋한 여유가 잔잔하게 배어 있습니다.
가사 역시 파이프에서 시작된 사색을 담고 있습니다. 파이프도 사람도 흙으로 만들어졌고, 오래 쓰이면 그을고 금이 간다는 이야기, 뜨거운 불씨를 바라보며 떠올리는 삶의 덧없음 같은 것들이죠. 짧은 곡이지만 바흐의 담담한 성찰이 담겨 있고, 당시 파이프 문화가 지녔던 일상의 온기와 차분한 정서가 은근하게 배어 있는 작품입니다. 바흐의 생활 속 풍경을 음악이라는 창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경험이기도 하고요.
여러분도 잠시 시간을 내어 한 번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파이프를 피우지 않는 분이라도 음악에 담긴 느긋함과 사색의 온도는 충분히 전해질 겁니다.
So oft ich meine Tobackspfeife 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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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이미지 1]
[이미지 2] - Pulp Fiction (1994)
[이미지 3]
[이미지 4] - The X-Files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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